
꿈과 목표는 역경을 이기는 원동력
경기 양평 형제공구사 이상돈 대표
조용하고 물 맑은 전원도시 경기도 양평. 이 곳에서 소위 ‘공구 좀 안다’ 하는 사람들에게 ‘형제공구사‘는 그들의 모든 필요를 충족 시켜준다. 일반 공구뿐 아니라 구하기 어려운 목공도구를 이곳에서는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장님과 직원들의 친절도도 높아 늘 만족한다는 게 주변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이곳에서 ‘형제공구’를 찾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20년 넘게 공구상을 운영하며 인덕과 신뢰를 쌓아온 이상돈 대표. 차분하면서 동시에 뿌리 깊게 사업을 일구고 있는 이 대표의 저력이 궁금하다.
큰형님, 작은형님, 나까지 ... 삼형제가 모두 공구업으로
이상돈 대표의 형제들은 모두 공구와 인연이 깊다. 철물점을 하는 큰형님, 공구점을 하는 작은형님 덕에 이 대표도 자연히 공구와 친하게 됐다. 이름도 이런 뜻을 살려 ‘형제공구사’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공구업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제대 후 서울에서 홈패션과 의류를 백화점에 납품하는 일을 4~5년 정도 했어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죠. 그러던 중 작은형님께서 권유하시더군요. 같이 공구업계에서 일하는 것은 어떠하겠냐고. 그래서 고향인 양평으로 이사를 해 공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작은형님도 큰형님께 배워서 독립한 케이스. 그래서 동생에게도 공구업을 제안하게 된 것이다. 3년 정도 형님 밑에서 일을 배우던 중에 IMF가 터졌다.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이 대표는 독립을 준비했다.

“IMF 직후, 98년쯤 독립을 했어요.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였죠. 이 업계는 물론이고 나라 전체가 그랬잖아요. 그렇게 되니까 오히려 희망이 생겼어요. 더 이상 내가 내려갈 곳은 없구나, 여기서는 치고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했어요.”
처음 형제공구 창립 당시 아파트를 팔고 양평교 근처에 11평 가게를 얻었다. 이 대표의 힘겨운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제일 먼저 청계천에 가서 박스를 주워왔어요. 가게 안에 물건을 채울 만큼 여유가 안 되니까 빈 박스를 물건 있는 것처럼 디스플레이 해 놓은 거죠. 한푼 두푼 돈을 벌 때마다 실제 물건과 박스 하나를 바꿔 넣었어요. 그 박스를 빼내고 채우는 데 거의 1~2년을 보냈죠.”
참 고생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힘든 시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한다.
형제의 손길이 묻은 ‘형제’ 공구상 ... 고난도 전화위복되어
이 대표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따로 있었다. 자리를 잡아가던 중 갑작스럽게 작은형님과 가게를 합병했다. 작은형님이 미리 자리잡고 있던 양평대교 입구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이곳은 유동 인구도 많고 양평에서 목 좋기로 유명했다. 7~8년 정도 운영하자 경제적으로 확고하게 자리가 잡혔다. 건물을 올리고 길을 닦고 형제의 손길이 묻어있던 진짜 ‘형제공구사’가 완성된 것이다.
“합병한 후 작은형님이 공구업에 손을 떼면서 가게를 저에게 맡겼어요. 혼자 형님 없이 혼자 가게를 운영한다는 부담감과 설렘으로 정말 열심히 일궈나갔어요. 7~8년 정도 운영했을까요? 토지 주인과의 뜻하지 않은 문제로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물질적 손해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것보다도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시기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공구사는 더욱 단단해졌다. 또 한 번의 이사를 거듭해서 현재의 자리인 공흥로에 자리를 잡았다. 터는 조금 손해 보더라도 주차나 물품보관 등 사업을 키울 만한 장점들이 많았다. 여기서 사업은 더 발전했다.
“돌이켜보면 이런 과정이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전화위복이 된 거죠.”
현재 형제공구사는 400평 규모의 매장, 직원 8명을 둔 큰 공구상으로 발전했다.

공구상은 남자들의 쇼핑 천국 ... 소비자 우선이 핵심
매장이 커진 만큼 운영 방식에도 특징을 갖게 됐다. 우선 디스플레이에 비중을 많이 뒀다.
“공구상은 남자들에게는 쇼핑 천국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봐도 될 거 같아요. 여자들이 백화점에서 마음껏 옷을 고르고 입듯이 남자들은 공구상에 와서 원하는 공구를 만져보고 사용해보고 소위 말하는 신상을 구경해요. 그래서 상품 진열에 비중을 둬야 한다고 생각했죠.”
형제공구상의 디스플레이에 가장 기본 원칙은 사람의 눈높이에 물건을 맞추는 것이다. 형제공구 매장을 가만히 둘러보면 거의 모든 상품이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소비자가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도록 진열했다. 젊은 시절 백화점 납품 유통 경력이 큰 도움이 됐다. 예전엔 벤치마킹을 하러 전국공구상을 돌았는데 지금은 반대로 다른 지역에서 형제공구사를 구경하러 온다고 한다.
형제공구사는 그만의 특징이 또 있다. 물건 하나하나에 바코드가 붙어있다. 마트에서 사용하는 바코드를 공구업계에 도입함으로 소비자들에게 가격을 오픈하는 효과와 동시에 구매의 원활함을 도왔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정확하게 찍히니 자연히 신뢰가 간다고 말한다. 형제공구의 가격경쟁이 자신 있는 이유이다.
“원활한 판매가 이루어지려면 소비자가 우선이어야 해요.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서 신뢰와 선택권을 함께 제공하는 거죠. 요즘 고객들은 까다롭고 요구조건도 많아요. 여기에 맞추는 것이 우리 일이예요. 고객이 만족할 때 판매가 이루어지니까요.”

꿈 많은 사나이 ... 언제나 꿈을 향해 달린다
이상돈 대표에게 지역 대표 공구상사로 성장하기까지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잠시 침묵 끝에 답을 했다.
“전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람을 먼저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가 없다면 무슨 일을 진행할 수 있겠어요?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고 믿음으로 일을 진행하다보면 자연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요. 좋은 아내를 만나고, 저에게 언제나 도움을 주는 훌륭한 지인들을 만났죠. 이런 점이 지금의 저를 만들고 형제공구를 만들어 준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현재 매장을 업그레이드 시켜서 미국 홈디포처럼 원스톱 매장을 꾸리는 것이 목표다. 또 사업이 커지면 법인화해서 개인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이윤을 나눌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지금이 제 생애에서 가장 많이 뛸 수 있는 시기 같아요. 그래서 늘 꿈을 품고 뛰자 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목표 달성을 위해 더욱 분발하고, 힘든 것도 이기는 원동력이 되니까요. 매일 조금이라도 발전하고 향상하는 게 행복 아니겠어요.”
글, 사진 _ 배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