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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매일 한 장씩 꿈 적으며 성공 이뤄 천안 대한종합상사 박창수 대표


꿈을 좇는 사나이

천안 대한종합상사 박창수 대표

 

호두과자와 천안삼거리 노래로 유명한 천안. 대대로 농업이 발달했지만 넓은 부지에 크고작은 중소제조기업이 많이 들어서 있어 공구상도 성업을 이루고 있다. 천안에서 대표적인 공구상을 물으면 성거읍 신도로 쪽에 자리잡은 대한종합상사를 꼽는다. 늦깎이 공구상으로 시작한 사장님이 열정적으로 키워내, 천안에서 보기 드문 곳이라는 평이다. 시가지가 밀집한 성거읍 구도로를 벗어나 농지가 펼쳐진 한적한 신도로 쪽으로 나가면 한눈에도 깔끔한 대한종합상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매장 건물은 물론 근처 창고를 손수 짓느라 직원들보다 더 기름때 묻은 작업복에 용접기를 들고 돌아다닌다는 박창수 대표를 만나러 천안으로 향했다.


마흔 넘어 기로에서 만난 공구업

인근 평야가 초록으로 물드는 계절. 넓은 부지에 시원하게 자리잡은 대한종합상사는 새봄을 맞아 옷을 갈아입은 듯 깔끔하다. 사장님의 부지런한 성격이 단번에 느껴진다. 공구업계에 입문한지 올해로 꼭 10년째가 된다는 박창수 대표.
대전이 고향이라는 박 대표는 상고 졸업 후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자동차 업계에 인연이 닿아 오랫동안 경리업무를 담당했다. 본인도 공구상 사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할 정도로 기름 떼 묻는 공구상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했다.
“닛산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천안에 공장을 지을 때쯤이었어요. 경리부장으로 스카웃되서 10여 년을 일했죠. 그런다 40대가 되니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 회사에 끝까지 다닐 수 있을까. 아니면 창업을 할까. 한다면 뭘 할까. 중소기업으로 옮길까. 편치 않았던 시기였죠.”
창업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지인들의 충고에 안정적인 길을 택하자 싶어 기아자동차 시트 회사에 임원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업무에 부딪히며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됐다. 그때 친구의 ‘부름’을 받고 방문한 곳이 청계천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가 제가 사는 모습을 보고 ‘너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안타까워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청계천에 한번 와보라더군요.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0평도 안 되는 작은 공구상에 직원이 4명이나 되고 해외 수출로 눈코 뜰 새 없더군요. 와 이런 세계가 있구나 싶어 결심했죠.”


 

기업 임원 버리고 청계천으로

18년 회계 경력을 과감하게 접고 공구상 입문에 들어섰다. 박창수 대표가 정한 준비 기간은 단 3개월. 믿을 것은 공구업을 알게 해 준 친구뿐이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니까 7개월 실업급여가 생겼어요. 그동안은 아내에게 비밀로 하고 새벽 첫차를 타고 매일 청계천으로 향했어요.”
가자마자 바닥청소부터 시작해 납품 영업과 짐 운반 등을 도우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배웠다. 물론 보수는 없다. 박 대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인맥이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뭐라도 물어서 배우고 필요한 것을 요청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 초점을 뒀다. 청계천 사장님들 명함을 받고 안면을 익혔다. 정확히 2개월 반. 시간은 턱 없이 부족했지만 친구가 큰 힘이 됐다.
“친구가 자가기 갖고 있던 청계천 전화번호부를 베껴가도록 해 줬어요. 그 전화번호부가 저를 살린 거죠. 그거 하나로 청계천 인맥을 얻은 것이니까요.”



전화기 한 대로 시작한 공구상

직장 때문에 대전, 서울, 천안 등 정착을 쉽게 결심하지 못했지만 공구상을 결심하면서는 오랫동안 생활해온 ‘천안’에 안착하기로 정했다. 가족들 몰래 빈손으로 시작한 공구상이기에 가게도 없이 장사가 시작됐다.
“사업자는 냈는데 공구상을 차릴 자금이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 사무실 한 켠에서 친구가 쓰던 책상을 얻어서 전화 한 대, 팩스 한 대, 핸드폰 하나로 시작했죠. 물건도 하나 없이 무슨 배짱이었는지 납품에 도전했어요. 명함과 팜플렛만 들고 돌아다녔는데, 참... 쉽지 않더군요.”
박 대표의 개업 소식을 듣고 옛 회사 동료가 납품 1호를 끊었다. 품목은 장갑. 금액은 10만원.
“정확하게는 10만 9천원이예요. 하하하. 큰 소리치면서 기업체 납품이라고 들어온 주문이 10만원치 장갑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웃기면서도 너무나 고맙죠.”
하나 둘 주변 지인이 도와 납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어디서 뭘 사야되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납품 들어오면 일단 청계천에 전화해서 물건을 받습니다. 당시 저는 직거래도, 도매상도 끼고 장사할 수 없는 형편이었어요. 그때 청계천 수첩이 정말 큰 위력을 발휘했죠.”

 

아내와 힘 합쳐 작은 가게부터 시작

사업에 대한 고민 한 켠에는 아내에게 아직 말못한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다.
“실업급여가 나오는 동안은 자리를 잡고 아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는데. 세상에 비밀은 없더군요.”
사업차 도움을 받기 위해 연락한 지인이 아내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울고불고 난리가 한바탕 난리가 났지만 오히려 아내는 내외조의 여왕으로 변신했다. 살고 있던 대전집을 정리하고 천안으로 본격적으로 이사를 했다. 얹혀살던 친구 사무실을 떠나 신방동 공구유통단지에 25평 매장을 얻으면서 어느덧 안정적인 매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단 기간에 어떻게 이렇게 성정했는지 묻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진짜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발에 땀이 나도록 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요.”
대한종합상사는 주로 납품을 많이 하는데 이는 박 대표의 곧은 성품과 한 듯 안한 듯 편안한 인맥관리 덕분이다. 주변에 지인이 많다보니 제조업체 납품을 주로 하면서 차곡차곡 매출을 늘릴 수 있었다.
“제조업체 납품이 많다 보니 공구부터 청소용품까지 잡자재 납품양도 상당합니다. 그러다보니 매장이 너무 좁아서 큰 곳으로 옮기려고 물색하던 중에 지금의 자리가 나온 거죠.”
이 또한 지인의 도움이다. 넓고 쾌적해 주차와 쇼핑에 좋고 성거, 입장, 직산 쪽에 거래하는 제조사와 훨씬 가까워졌다.




내 꿈은 백화점식 공구상

새로운 재능도 발견했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남달라 용접 등 기술도 쉽게 익힌다는 점이다. 비용도 줄이고 내 아이디어대로 고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매장 기둥부터 진열장까지 박 대표의 손길이 안 간 곳이 없다. 지금은 옆 공터에 창고 짓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처음에는 펑크도 내고 눈이 아파서 고생도 해보고 우여곡절 많았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어떤 사람은 용접할 때 눈 크게 뜨고 바짝 얼굴 대고 하라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큰일나죠.”
지금은 장비도 제대로 갖추고 소리만 들어도 깊이 들어갔다 안 들어갔다 알 정도는 된다고.
박 대표에게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자신이 꿈꾸는 공구상의 모습이 있다고 한다.
“공구업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왜 공구상은 이렇게 지저분하지, 왜 가격이나 물건 위치를 주인밖에 모르는 거지,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컸어요. 그래서 나는 백화점 식으로 쇼핑할 수 있는 매장을 만들겠다. 손님이 직접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돌아볼 수 있는 매장을 만들겠다 생각했죠. 그렇다고 지금 자리잡았다고 생각은 안 해요. 짧은 기간 동안 일어선 만큼 다져야할 것도 많이 있죠.”

 

정직이 최고의 무기

가장 힘들 때가 언제였냐는 물음에 박 대표는 닛산자동차 자회사인 칼소닉에서 퇴사할 때를 떠올렸다. 한일 합작 회사이기에 보증 관계가 투명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자신을 믿어준 오너에게 인간적인 실망감을 준 것 때문에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사표를 냈다. 오너의 간곡한 부탁에 1년 동안 남아서 마무리하고 당당하게 회사를 나왔다.
“당시 정신적 고통은 참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가장 힘들었어요. 정직하면 떳떳해지고 자신감 있어 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정직이 최고의 무기’죠.”
2018년까지 기한을 두고 공구업에 박차를 가하고 싶다는 박창수 대표. 그는 월 10억이라는 큰 액수에 도전하고 있다.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아들도 얼마전부터 아버지 곁을 돕고 있다.
“저에게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이 있습니다. 카페를 열어 가스펠 그룹의 공연도 하고 싶고 해외 선교사업도 하고 싶어요. 나 하나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내가 하는 일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꿈을 꾸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꿈이 이뤄진다’고 말하는 박창수 대표의 말에 견실함이 묻어난다.



글.사진 배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