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상탐방
경기 군포 청년안전공구철물
20대에 공구장사를 시작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젊음이라는 에너지와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찾아오는 어려움도 경험이라 여기고 긍정적인 태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경기도 군포의 청년안전공구철물 이명찬 대표도 그렇다.
‘청년안전공구철물’을 운영하는 이명찬 대표는 바로 옆 ‘청춘카페’라는 24시간 무인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공구인이다. 20대 후반에 불과한 젊은 나이에 벌써 공구상과 카페매장 2곳을 동시에 운영하는 번듯한 사장님으로 일하는 것. 무인카페 옆 공구상은 이색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이다. 젊은 사람이 가진 유연한 사고방식이 가져온 결과다.
“원래 카페는 내부 공간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공간이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굳이 뭐 저희만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더라고요. 죽은 공간을 한 번 살려보자 싶어서 카페를 함께 만들어 본 것이죠. 여기 근처에 편의점이 없으니 이른 아침에 방문하시는 손님분들 먹거리와 쉬는 공간을 제공하자 생각했어요.”
무인카페는 24시간 CCTV로 감시되고 설사 누군가 물건을 훔쳐가더라도 인건비를 생각하면 유지비가 유인매장보다 저렴하다. 거기다 바로 운영하는 공구상과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 문제가 생겨도 바로 응대 가능하다. 1개 매장도 운영하기 힘든 것이 현실인데 매달 월세를 내면서 2개의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이명찬 대표는 긍정적인 모습이 중요하다 말한다.
“긍정적인 모습, 밝은 모습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잖아요. 20대라는 나이가 때로는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거래처에서 젊다고 무시하기도 하고 또 미수금을 받으려고 매일 찾아가야 하는 일도 있었죠. 때로는 헐값의 고철을 사가는게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럴 때 마다 웃으면서 거절하고 웃으면서 수금 달라고 하죠. 사회생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 많더라고요.”
1996년생 이명찬 대표가 공구상을 처음 만난 것은 군대 전역 이후 부터다. 그의 아버지는 건물 내부에 들어가는 열교환기 납품 사업을 했는데 건설현장에 열교환기 배송 및 설치 일을 도운 것. 군대를 전역하고 바로 건설현장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고 건설현장에 필요한 다양한 공구를 구매하면서 공구유통 현장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아버지 사업을 돕다보니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는 어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군대를 전역한 이후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 대학을 다녔어요. 금토일 일하고 월화수목 공부했는데 전국을 다니면서 대형 열교환기 설치 및 교체 일을 했죠. 그때 전국의 다양한 공구상들을 보았습니다. 졸업 이후에도 건설현장에서 계속 일하면서 돈을 모았고요. 그렇게 공구상을 차릴 결심을 하게 되었죠.”
이명찬 대표의 가장 든든한 우군은 부모님이다. 공구유통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응원을 받았고 또 지금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가 주문 받은 물건 배송을 하거나 납품을 할 때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는 부모님이 청년공구안전철물의 매장을 지켜준다. 그가 공구상을 시작한 것도 부모님과의 미래를 계획해서다.
“건설 현장에서 하는 사업이라는 것이 사실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거든요.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빨리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공구상을 보면 나이가 많은 분들도 일을 하시잖아요. 공구상이 잘 되면 부모님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고 또 만약 잘 안되어도 저는 아직 젊으니까 다른 것에 새롭게 도전하면 된다 생각했죠. 그래서 대출도 받고 모은 돈을 다 써가며 시작했어요. 결심했으면 바로 실행하면서 상황에 따라 정하는 것이지 미루면 안되더라고요. 결심하면 움직이고 문제는 해결해가면서 일하는 거죠.”
공구상과 무인카페를 함께 운영하면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평일에는 각종 자격증 공부와 유통업체 카탈로그 및 가격표를 보면서 공부를 했다. 쉬는 날에는 공구 관련 각종 전시회를 다니면서 장사에 필요한 지식을 쌓았다고. 군 전역 이후 계속 일을 했기에 어느 20대 청년들이 가지는 추억은 쌓지 못했다.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것과 내가 사장이 되어서 일하는 것은 또 다르더라고요. 직원 일 때와 달리 모든 것에 애정이 가고 신경이 쓰여요. 처음 가게를 알리려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인사하고 집수리하시는 분과 협업을 하면서 가게를 알리기도 하고요. 4계절이 바뀌니 점차 안정되고 또 찾아와주시는 단골도 생기더라고요. 그러다보니 2025년이 되어 29살이 되었고요. 후회는 없고 보람 있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페스티벌 같은 축제 한 번 못 가본 것이 아쉽긴 해요.”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이명찬 대표의 취미는 오지탐험이다. 열심히 일한 후 이따금 찾아오는 긴 연휴에는 한국을 벗어나 이색적인 현장을 찾아간다. 네팔, 중동, 몽골 등 다양한 곳을 여행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지역은 대학을 다니면서 부친의 일을 도울 때 방문한 미국 LA. 당시 코로나19가 극성이라 여행이 어려웠던 때였다.
“21년도 당시 미국에 열교환기를 수출했거든요. 그런데 미국 LA에서 기계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직접 살펴봐야 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백신을 어렵게 구해서 맞고 우여곡절 겪으며 미국에 갔었죠. 미국에 내리니 코로나 때문에 택시도 잡기 어렵고 렌트카도 없더라고요. 어찌어찌 고생하며 현장에 가서 3주 동안 수리를 다 해주고 돌아왔던 비즈니스 여행이 가장 기억이 납니다. 무언가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극복한 뒤 찾아오는 기쁨이 크더라고요. 하지만 이후 네팔이나 몽골 같은 오지를 자꾸 찾는 것 같습니다. 공구상 경영도 무척 어렵습니다. 그런데 노력하고 도전하니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도전하는 것 같아요.”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