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전체메뉴 열기

공구상탐방

경북 포항 통영기계상사

 

제 가족은 제가 책임져야죠
20대 젊은 공구인의 당찬 마음가짐

 

경북 포항 통영기계상사 김경환 실장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병환 소식에 고향으로 내려온 김경환 실장. 다른 것 없이 어머니와 여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공구상 운영을 맡기로 결심한 그는 직원들과 함께하는 가족 같은 공구상, 하나의 동아리 같은 공구상을 꿈꾼다.

 

 

난데없던 아버지의 병환 소식


경상북도 포항시 통영기계상사 2세, 올해 나이 스물아홉 김경환 실장. 처음 이곳 포항 남빈동 공구거리에 매장을 연 그의 부친 김언상 대표의 고향은 매장명에서 짐작 가능하다시피 경남 통영시다. 150여 개의 섬을 가진 우리나라의 나폴리, 더 나아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시는 그만큼이나 멋진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김언상 대표는 어떤 인생 곡절이 있길래 아름다운 고향 통영을 떠나 먼 포항시에 공구상을 차린 것일까? 그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지금은 듣기 힘들다. 
서울 연세대학교 환경공학과에 재학중이던 김경환 군에게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2019년 5월 2일이었다. 경환 군은 그날의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너무나도 난데없는 이야기였다. 평소 술담배가 잦던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그렇게 쓰러지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처음 소식 듣고 내려왔들 때 당연히 슬프긴 했는데 무엇보다 어머니나 동생에게 가게를 맡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가족 중에 아빠 외에는 남자가 저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가게를 그리고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그런 결심이 들었어요.”

 

건축가 희망 학도에서 공구상 대표로


학창 시절 김경환 실장의 꿈은 건축가였다. 복수전공으로 실내건축을 선택해 학업을 수행했다. 하지만 매장 운영을 담당하게 된 뒤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학교라는 포근한 요람 안의 학생에서 공구상 대표라는, 거친 사회 속 소상공인으로의 전환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업무를 맡은 초반에는 힘든 점이 많았다. 아버지의 매장이기는 하나 전까지는 공구상 운영, 공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대학 졸업 후 당연스레 기업 취업을 생각하고 있던 실장에게 대표로서의 매장 운영 및 거래처 관리는 난생 처음 맡게 된 업무였다. 무엇보다 직원 관리가 힘들었다.


“예전 아버지가 운영할 때 있던 오래 된 직원분들은 지금 다 그만두셨어요. 제 관리 능력이 부족했던 거죠. 거래처에서도 예전 직원분들에게 직접 연락하는 거래처가 많았는데 그런 부분은 거래처 한 군데씩 다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리면서 해결해 나갔어요.”

 

 

바꾼 것과 배운 것


말한 것처럼 처음엔 힘든 점이 많았다. 그때는 통영기계상사의 주력 판매 품목이던 브이벨트(V벨트)가 뭔지도, 어디에 사용하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현장에서 경험을 겪으며 익혀 나갔고 매장 일 시작 5년여가 지난 지금은 그래도 어엿한 공구 전문가가 되었다. 매장을 운영하며 바꾼 점도 많다. 기존 제품만을 사용하려 하던 거래처에 신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그중 하나다.


“기존 거래처에서는 쓰던 제품들만 계속 사용하려 해요. 신상품도 거의 받지 않고요. 뭔가 계속 고이는 느낌이었요. 그래서 신제품을 제안하고 또 들여놓고 하다 보니까 거래처에서도 관심을 가졌어요. 매장을 찾은 소매 손님들도 마찬가지고요.”

 

통영기계상사의 주 납품 품목인 브이벨트


바꾼 것도 많지만 자기 스스로도 공구상을 운영하며 배운 것이 많다고 김경환 실장은 말한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사실 현실감각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사회생활하는 방법도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윗사람들 거래처 분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매장 운영 초기에는 운영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려 했다는 김경환 실장. 하지만 지금은 단기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또 자주 조정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것 역시도 5년간의 매장 운영에서 익힌 것이다.

 

고수익 매장보다 직원 돈독한 매장으로


나이든 직원들이 전부 퇴사한 이후 김경환 실장은 새 직원들을 채용했다. 마음이 맞는, 젊은 직원들을 말이다. 지금 통영기계상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김경환 실장과 그의 모친, 그리고 대표 또래 나이의 젊은 직원들 세명이다. 김 실장은 직원들과 함께하는 미래의, 어쩌면 독특한 매장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중이다. 많이 팔아 돈을 많이 버는 매장이 아닌 직원들과 서로 돈독한 마치 하나의 동아리와도 같은 매장을 꿈꾸고 있다.


“제가 가진 영업 계획들이 몇 가지 있거든요. 아직 큰 성과는 없지만 그래도 작은 성과들을 하나씩 이룰 때마다 성취감이 들더라고요. 제가 그런 것처럼 직원들도 함께 성취감을 느꼈으면 해요. 그래서 저 혼자만이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 통영기계상사를 만들어 가고 싶어요.”


직원들과 함께 이루는 매장을 희망하는 김경환 실장은 오늘도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매장을 더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 중이다.

 

경기 불황 위기, 기회로 바꾸고 싶어


대학을 다니다 내려와 공구상 운영을 하게 된 것에 대해 포기한 것은 없고 오히려 전부 얻은 것들뿐이라고 김경환 실장은 말한다. 여전히 아버지의 병원비가 지출되는 상황에서 공구상에서 일해 엄마와 여동생, 내 가족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무엇보다도 큰 얻은 것이다.
대학 시절 친구들 가운데에는 공구상을 운영하는 그에게 “자영업 하면 돈 많이 벌텐데 좋겠다”라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막상 해보면 그런 말 쏙 들어갈 걸?’하는 생각이 든다고 김 실장은 말한다. 무엇보다 한 매장의 대표로서의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다.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해 취업한 친구들에게 부러운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덜 져도 된다는 것이라고 김경환 실장은 말한다.

 

김영환 실장이 운영중인 온라인 쇼핑몰 청년공구상


“지금 경기가 안 좋잖아요. 그래도 어떻게든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아 10원이라도 더 저렴하게, 그리고 1초라도 빠르고 정확하게 물건을 전달해 드려서 저희 쪽으로 매입을 유도하고 싶어요. 또 지금 운영하는 온라인 매장인 ‘청년공구상’에도 조금 더 역량을 집중하려 합니다.”


30년 후의 통영기계상사는 어떤 모습일까를 묻는 질문에 김경환 실장은 지금 직원 수의 두배 되는 직원수의 공구상, 현재 매출액보다 세 배 되는 공구상, 그리고 대표 없이도 잘 굴러가는 공구상이 되어 있을 거라 대답했다. 그리고 2호점 오픈도 미래의 목표다.
이런 목표는 묵직함 책임감을 가지고 매장을 운영하는 김경환 실장이 정식으로 매장 대표 직함을 달게 될 때쯤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