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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男도 女도 아닌 철의 여인이로소이다



男도 女도 아닌 철의 여인이로소이다


울산 세창하이테크 장춘희 사장


 
정갈하게 빗어 넘겨 정리한 짧은 머리, 짙은 검은색작업점퍼와 하얀 데님바지에 활동성 편한 운동화. 기초화장 외에 색조화장은 전혀 하지 않아 거의 민낯에 가까웠고, 액세서리라고 해봐야 치렁치렁 하지 않은 작은 귀고리 정도만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세창하이테크 장춘희 사장과의 첫 만남, 첫인상에서부터 중년 여성의 이미지보다 사업가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던 이유다.


갑작스레 곁을 떠난 남편,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공구업계에서 여성 오너를 만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드문드문 있다. 하지만 남편이나 형제와 함께, 혹은 친인척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편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장 사장은 남자 못지않은 배포와 사업수완으로 직원들과 공구상을 이끌고 있었다.
13년 전만 해도 장 사장은 망치, 드라이버 외에 공구라곤 전혀 모르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원래 남편이 전적으로 운영했어요. 그땐 연마 제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했죠.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었어요.”
단란했던 가정을 신이 질투해서일까. 불행이 장 사장을 덮쳤다. 남편이 위암 진단을 받은 것. 하지만 초기였고 곧장 수술에 들어갔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그 후가 문제였어요. 전이가 됐나 봐요. 10개월 동안 암은 속절없이 남편의 몸을 갉아먹었어요. 그렇게 허망하게 남편을 먼저 보냈죠.”
쓰나미처럼 몰아친 불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장 사장은 허무하게 1년을 보냈다. 이런 그를 일으킨 건 다름 아닌 두 딸이었다.
“딸이 ‘엄마, 먼저 간 아빠 보란 듯이 잘 살자’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날 마음을 굳게 먹고 가게로 나왔죠.”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믿었던 직원의 배신이었다.
“남편이 데리고 있었던 직원 2명을 그대로 뒀었는데 그중 한 직원이 가게를 마치 제 것 마냥 마음대로 하고 있었어요.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서 그 직원을 해고 시켰어요. 홀로 부딪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고 가게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치마대신 바지를 선택했다.
“이 업계는 남성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을 곳이죠.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제가 그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때부터 말투도 약간 남성적이 되었던 것 같아요. 사람을 대할 때 ‘~하세요’ 대신 ‘~습니까’라고 습관적으로 말하게 됐어요.”
남편이 가지고 있던 납품처를 위주로 거래를 다시 시작했다. 제품의 쓰임새는 몰랐지만 이제부터 ‘내 일이다’라고 생각하니 사업과 관련한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버릇도 생겼다.
장 사장은 주 품목이었던 연마석에 대해서 일부로 공부를 하진 않았다. 대신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예전과 달리 와 닿았다고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돌아가신 분이 물려준 것이라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보니 관련 지식들이 머릿속에 하나하나 쌓여갔습니다.”



사람을 믿으니 난제도 술술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 간의 신의’다.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제 주관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믿어야 상대도 믿음 있게 일을 처리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 관계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내가 진실하게 해도 본인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죠. 그래도 신뢰를 늘 우선순위에 둬야합니다.”
장 사장이 이런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울산에 위치한 한 대기업 조선소와 거래를 시작했을 무렵이다. 장 사장은 이듬해 큰 중공업 납품계약도 연달아 따냈다. 일이 승승장구 하려던 찰나 그와 거래를 하던 대리점 업체에서 거래 중단을 요구했다.
“아마 본사에서 직접 거래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뭐 자기들은 30년 가까이 거래를 트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제가 하게 되니까 심통이 난 셈이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본사의 횡포에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접어야 겠다고 생각한 장 사장은 이삿짐센터를 불러 가게 물건을 정리했다. 포장 이사를 마치고 납품 거래처에 거래를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과 공문을 작성해 보내려던 찰라 평소 알고 지내던 업체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새로운 연마업체를 소개해 주겠다는 소식이었다.
“내일이면 다 정리가 되겠구나 했던 그 순간이었어요. 그때 지인이 ‘장 사장 이렇게 사업 정리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다. 새로운 곳을 소개해 주겠다. 그곳이라면 납품처에 물건을 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연결을 해 줬어요. 진짜 드라마틱한 일이죠.”
순식간에 문제가 해결됐다. 장 사장은 이게 다 그동안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해왔기 때문에 얻게 된 복이라고 여긴다.


세창, 품목을 넓히다
 
큰 업체에 납품을 하면서 장 사장은 연마 단일 제품만으로는 사업을 확장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연마와 연관된 작업을 위해서는 용접, 수공구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거래를 하고 있는 곳에 신뢰를 쌓았는데 관련 제품도 함께 납품하면 더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연마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가게 상호도 세일연마사에서 세창하이테크로 변경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속단속결합니다. 품목을 넓히는 것도 망설임을 두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면 그걸 빨리 잡아야 내것이 되기 때문이죠. 계속 연마에만 연연했다면 가게 확장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장 사장의 수완 덕분에 가게는 꾸준히 성장했다. 20평 가게 규모도 100평으로 넓어졌다. 매출도 10~15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취급품목도 연마제품 한 가지에서 소모자재품을 모두 취급하게 됐다.



울산서 ‘세창’ 알리고파
 
“원래 쉰 살이 되면 일을 그만 두려고 했습니다. 두 딸 대학 졸업까지만 시키자라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사업이 생각보다 잘 됐네요. 또 돌아가신 분을 위해 ‘세창’이라는 이름을 계속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래서 장 사장은 일하는 직원 중 가장 믿음직스러운 직원에게 사업을 물려줄 생각도 있단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믿음입니다. 전 직원들을 정말 믿습니다. 모든 업무를 맡기고 있죠. 그만큼 직원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잘 해주고 있습니다. 자녀들 모두 각자의 삶이 있기에 사업을 물려주는 것은 저희 직원들 중에서 하고 싶네요.”
최근 시도한 바코드 도입과 온라인 상점 준비도 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거금을 투자해서 편리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직원을 위해서입니다. 지금 당장은 시행착오도 겪을 테고 투입되는 자금도 꽤 큽니다. 그래도 향후 5년, 10년을 보면 투자는 꼭 필요해요. 미리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제야 라고 생각하면 그땐 늦어버린 것이 될 테니까요.”
장 사장이 가진 단 하나의 바람은 ‘세창하이테크’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
“울산에는 조선업 등 큰 규모의 제조업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업계에 가게 이름을 알리고 싶습니다. 관련 종사자들이 ‘세창’하면은 ‘아, 그 상호 어디서 들어봤다. 참, 일 잘한다고 하더라.’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죠. 그렇게 되려면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히 그에게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을 정도로 남성 못지않은 당당함이 느껴지는 장춘희 사장. 자녀와 생계를 위해 뛰어든 공구상 일을 통해 새로운 목표를 계획해 나아가고 있는 그를 보며 애뜻한 모성애, 가장의 위대함, 사업가의 카리스마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