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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가족과 함께라면 천하무적 경남 진주 계양공구 강명중 대표



가족과 함께라면 천하무적
 
경남 진주 계양공구 강명중 대표



가족은 언제나 든든하다. 언제나 의지가 되고 서로의 편이 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전해온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을 많은 가족이 가훈으로 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구업계에서도 가족이 공구상을 운영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경남 진주에 위치한 계양공구도 마찬가지. 아버지와 아들, 아내가 함께 공구상을 운영하며 행복을 일구고 있다는 이곳을 찾았다.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
 
계양공구에는 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도 얼굴하나 찌푸리는 법이 없다. 아버지는 아내를 배려하고 아내는 장성해 아버지를 돕는 아들을 대견해하며 늘 서로에게 격려와 감사를 아끼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허물도, 단점도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강명중 대표의 말이다. 이런 분위기는 가게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깔끔한 매장 진열부터 윤이 나는 바닥까지. 구석구석 둘러봐도 먼지 한톨 찾는 게 어려울 정도다. “흔히 ‘제 일처럼 한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여기서는 모든 게 제 일 같죠. 때문에 진열, 청소도 훨씬 더 손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에요. 가족이 솔선수범해야 직원도 공동체의식을 느끼고 함께하기 때문이죠.” 아내 임혜정 씨가 말했다. 직원들은 뭐든 제 일처럼 해낸다고 했다. 싫은 내색 없이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늘 감사할 뿐이다. 강명중 대표는 “다 가게 살림을 꾸려 나가는 아내 덕분이다”고 귀띔했다.



직원 재무상태 관리해주는 공구상
 
“공구상은 총각 직원이 많아요.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젊은이죠. 첫 직장에, 첫 수입인 만큼 씀씀이를 통제 못하고 써버리는 경우를 봤어요. 그게 안타까워서 직접 관리에 나섰죠.” 임혜정 씨는 직원들 사이에서는 ‘마귀할멈’으로 통한다. 직원들 월급을 철저히 관리해 생겨난 별명이다.
“일한 만큼 직원 통장에 돈이 쌓여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래서 월급통장을 직접 관리해요. 적금도 들어주고, 전세도 얻어주고, 임대에 집 마련까지. 덕분에 신용불량자에서 회복된 직원도 있고 맨 몸으로 입사해 아파트를 마련하고 장가를 간 직원도 있어요.” 임혜정 씨는 직원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도 가게 몫이자 가게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했다. “간혹 직원 독립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공구상도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잘 돼서 나가면 저희 공구상 이미지도 더불어 좋아질 텐데요.”

 


A/S, 청계천을 거쳐 진주로
 
강명중 대표이사는 국내 한 전동기계 전문 회사의 영업부에서 일하다가 지금의 공구상을 시작했다. “85년도에 입사했죠. 기술파트에 들어가서 몇 년 지나지 않아 품질관리국가기사자격증을 땄어요. 전국 A/S 교육관리를 맡았어요. 4년 정도 근무하다가 퇴사하고 청계천 공구상에서 2년 정도 일을 배웠어요. 공구상을 해보고 싶다 생각해 선택한 길이었죠.” 이후 강명중 대표는 고향 진주로 내려와 공구상을 차렸다.
“청계천에서 일할 때 가게 매출을 상당히 많이 끌어올렸어요. 경쟁이 심한 그 곳에서 잘했는데 그보다 경쟁이 덜한 고향이라면 더 잘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강명중 대표는 청계천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공구상을 운영해 나갔다. 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거래 파트너와 신용을 쌓는 것이었다. “손님 결제 시기는 크게 신경 쓰지 않더라도 매입처 결제 기일 맞추는 것은 반드시 지켰어요. 그게 신용 쌓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업사원들이 우리가게 수금을 신경 쓰지 않도록 배려하자 오히려 그들이 저희를 더 신경써주는 반사이익으로 돌아왔어요.”



색색이 다른 바닥타일, 노력의 증거
 
늘 맑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97년 IMF시절은 이들에게도 힘든 시기였다.
“당시 가게를 옮기려고 계약을 했었는데, 잔금까지 치르고 난 딱 일주일 뒤, IMF 사태가 터졌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죠.” 이때 그들에게 가장 힘이 됐던 것은 직원들의 도움이었다. “통장을 해약하고 보험도 다 해약할 정도로 자금유통이 잘 안됐던 시기였죠. 그런데 직원들이 ‘가게가 힘든데 저희가 월급 절반만 받을게요’라고 말해줬어요. 너무 고마웠어요. 덕분에 힘든 시기를 똘똘 뭉쳐 이겨냈어요. 다시 생각해도 감사한 부분이네요.” 계양공구는 그 지속적인 성장과정을 고스란히 매장에 품고 있었다. 색이 다른 타일이 증거다. “12평 방 달린 가게에서 시작해 지금은 창고까지 300평 정도에요. 매장이 200평인데 끝에서 끝까지 오는데 10년이 걸렸어요. 모은 돈으로 옆 가게를 사고, 땅을 사고, 차곡차곡 늘렸어요. 그래서 색색 타일바닥이 남다르게 다가와요. 노력이 묻어있으니까요.”



공구상 2세, 경남 거점을 향해
 
강명중, 임혜정 부부에게 아들 강호영 부장은 자랑이다. “아들만 둘이 있는데 둘째는 지금 의경으로 군 생활을 하고 있어요. 강 부장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외국 인턴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다리를 다쳐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일이 있었어요. 그때 아버지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데요.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기대도 크고요.”
“군대 갔다 와서 마음을 먹었어요. 아버지가 일군 가게를 더 성장시켜보고 싶어요.” 아들 강호영 부장이 덧붙였다. 700만원에서 1천만 원 상당의 전자레벨 장비를 산 것도 강호영 부장이다. 수평과 인치를 교정하는 이 기계는 보유하거나 기술을 가진 측기사가 있는 공구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일종의 투자를 한 셈입니다. 고가의 장비가 이송 중 불량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작업을 위해 수리가 급한 손님들은 본사에 수리를 보내서 돌려받는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거든요. 시간, 비용 손실을 최소화 하려고 마련한 것이죠.” 임대와 함께 전동공구를 주로 취급하는 계양공구가 A/S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기본적인 수리에 전동, 엔진, 용접기 등 전문 A/S도 문제없이 ‘척척’이다. “직원 세 명이 기술연수를 받고 왔어요. 각 파트별로 세분화 전문화 시켜서 수리를 맡고 있는데 이는 저희의 강점 중 하나죠.” 가게의 장점에 대해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를 꺼내는 그에게서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가게 위치가 고속도로 옆이라 접근성이 용이하죠. 뒷편엔 주차장도 있어 편리하구요.” 앞으로의 공구상 모습을 묻자 강호영 부장은 향후 계획을 자신감 있게 설명했다. “전국 판매시장을 볼 때 지역마다 거점이 있어요. 서부경남권에서 거점 공구상이 되는 게 목표에요.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임대를 중고가 아닌 새 제품을 고집하는 것도, 고가의 수리장비를 갖춘 것도, 모두 이를 위해서 입니다.”
가족 모두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공구상, 직원 모두 제몫을 다해 일하는 공구상. 이들이 꽉 맞물린 기어처럼 제대로 작동하고 있기에 계양공구의 현재,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