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정리정돈으로 고객 믿음 받아
대전 공성공구마트 김훈태 대표
대전 대덕구 오정동은 대전을 대표하는 공구거리다. 그런 공구거리의 시작은 한남오거리인데 한남오거리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공구상이 공성공구마트다. 그렇게 공성공구마트는 공구거리 오정동을 대표하는 공구상이자 대전 지역을 대표하는 공구상이다. 공성공구마트는 깔끔한 디스플이로도 유명한데 깨끗하고 정리정돈 잘된 공구상은 김훈태 대표만의 고집이자 생활이다. 대전 공구거리를 대표하면서 넓은 주차지역과 깔끔한 정리정돈을 자랑하는 공성공구마트를 찾아가 보았다.
‘열사의 땅’ 중동에서 공구를 접해
공성공구마트의 김훈태 대표가 공구를 접하게 된 것은 한국 땅이 아니었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 중동지역에서 처음으로 공구를 접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공구상에서 일을 하거나 공구와 관련있는 직장을 다닌 것은 아니예요. 젊었을 때는 해외 취업을 나갔어요. 그때 당시 중동에서 건설업으로 해외취업을 희망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저도 지원을 해서 중동에 해외 취업을 나갔죠. 중동에 가는 것도 경쟁률이 어마어마 했어요. 설사 합격하더라도 몇 달을 기다려야 하구요. 그런데 저는 운 좋게 바로 중동에 가게 됐죠. 그래서 젊었을 때 이라크 쿠웨이트에서 일을 했어요. 그 곳의 건설현장에서 공구수불을 해주는 업무를 2년 동안 했어요. 중동도 건설장비나 이런 것이 귀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공구 관리를 하는 것이 일이었죠. 그렇게 해외에서 공구와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김훈태 대표는 해외 취업을 하면서 공구를 많이 배우게 된다. 당시 건설 현장에는 3200명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근로자들과 함께 중동에서 외화를 벌었다.
귀국 후 파이프머신 AS를 익혀 ‘열사의 땅 중동’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몇몇 사람은 지독한 더위가 견디기 힘들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김훈태 대표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근성으로 버티며 일을 했고 이것은 공구상을 경영하면서도 큰 도움이 된다.
“귀국 후 대구의 ‘공성’이라는 파이프머신 제조업체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공성’의 대표이사님께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지금 이렇게 공구상을 하게 된 것도 ‘공성’ 사장님의 권유가 있었어요. 대전 지역에 공성 파이프머신 AS해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공구상을 하며 AS도 함께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장사를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가게 이름도 공성공구마트구요.”
귀국 후 김훈태 대표는 ‘공성’에서 제품 조립검사를 하면서 기계를 본격적으로 익히게 된다. 기계 AS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성’에서 파이프 머신을 직접 조립 검사를 하며 AS기술을 익혔기에 대전에서 공구상을 운영할 기술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1987년에 대전역 근처의 원동에서 창업을 한다.
몇 년 후 찾아온 IMF의 위기
공성공구마트도 처음 시작할 때는 소매와 공성 파이프 머신 AS서비스를 통해 장사를 했다. 이후 차츰 차츰 영역을 넓혀 공장에 납품을 하는 등 크게 성장을 한다. 공구장사는 바른길로만 가면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다. 정도를 걷는 상인이 힘든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본인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나라가 힘든 경우다. 공성공구마트도 IMF로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몇 년간 열심히 장사를 하면서 사업이 차츰 차츰 나아지더라고요. 영업도 많아지고 또 직원들도 몇 명씩 있었고요. 그런데 IMF가 오니 어음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는 물건 값을 치르는 것은 전부 어음으로 했거든요. 그래서 그 일 이후로 어음을 없앴습니다. 아주 신뢰관계만 있는 업체하고만 현금으로 거래를 하죠. 엄청난 손해를 보았는데 또 어음을 받을 수는 없잖아요. 그때 너무 힘들어서 접어야 하나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니 내가 공구상 접으면 할 것이 없으니까. 다시 한번 해보자했죠. 그러니 다시금 조금씩 조금씩 커지더라고요. 그것이 좋더라고요. 납품에 그렇게 욕심을 버리지 않고 소매와 AS로 최선을 다하니 오히려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었어요.”
공성공구마트 성공비결
비결1. 손님입장에서 생각해라
- 깔끔한 공구상은 손님의 신용을 얻는다.
비결2. 욕심 부리지 마라
- 돈 몇푼 더 번다고 행복하지 않다. 신용을 지켜라.
비결3. 위험요소를 줄여라
- 어음을 받으면서까지 장사하지 않는다.
비결4. 정리정돈은 습관이다
- 깔끔함과 깨끗함은 고객의 신용을 얻는다.
비결5. 항상 친절해라
- 물건 하나를 팔더라도 기분좋게 팔자
정리정돈… 나만의 고집이자 버릇
공성공구마트를 방문할 때마다 놀라운 것은 사시사철 항상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감히 대전 최고의 정리정돈과 깔끔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김훈태 대표의 성실함을 알게 되고 신뢰를 가지게 된다.
“중동에서 공구 수불하는 일을 할 때도 3명이서 3000명이 쓰는 공구를 관리했습니다. 그때도 공구 반납 받다마자 바로 기계 점검하고 청소하고 원래 있던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못 찾잖아요. 그러니까 정리정돈을 하는거죠. 저는 정리정돈이 잘 되고 깨끗해야지 지저분하면 뭔가 안정이 안되요. 그래서 정리정돈은 거의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해요. 피곤하면 못하죠. 손님들 마당에 담배피우고 가잖아요. 그럼 저는 바로 주워요. 그게 그렇게 해야 하는 거구요. 공구상이 뭐이리 깨끗해 하는 사람도 있는데 서로 좋은거 아니겠어요? 깨끗하면 기분 좋잖아요.”
제품 배열은 손님의 마음을 헤아려 시도한다고 한다. 고객입장에서 생각하면 디스플레이 순서가 다 보이는 법이다. 새로운 품목 잘나가는 품목이 있으면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잘 나가지 않는 품목은 창고에 두며 장사를 한다. 무엇이 잘 나가고 무엇이 안 나가는지는 감으로 알 수 있다고. 이런 감은 공구장사를 오래한 덕에 나오는 것이다.
“적당히 어물어물 장사로 돈을 벌려고 하면 안되죠. 가게를 항상 깨끗이 하고 정리정돈을 하는 것도 열심히 정직하게 일을 하겠다는 마음의 연장선이죠. 공구장사 대충대충 하면 되나요. 대충해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 욕심 아니겠어요. 내 능력만큼 해서 버는 것이 장사지. 그렇게 하면 위험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누가 공짜로 무엇을 준다고 해도 싫어요. 노력한 만큼 내가 버는 거죠.”
정리정돈과 물건 배열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공성공구마트.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전을 대표하는 공구상으로 남을 것이다.
글, 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