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공구상탐방

남부럽지 않은 매출 - 수원 신우상사 신연식, 권선옥 부부

 


소규모 자본으로 시작해
 
남부럽지 않은 매출 올려요

수원 신우상사 신연식 권선옥 부부


중소기업청의 후원 제도를 이용하는 것도 기회
 
영업은 사람. 사람에게 야박하게 대하는 건 금물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면 사람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때때로 재취업에 실패하거나 창업을 하였지
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공구업에 뛰어들어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
는 이도 있다. 수원 신우상사의 신연식 권선옥 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적은 자본으로 공구업에 뛰어들어 탄탄한 매출을 올리게 된 과정을 들어보았다
 

평범한 회사원 공구인 되다

신우상사 신연식 대표는 원래 공구상과는 관련이 없었다. 경기도 수원에서 원단을 생산하는 한 모직회사에서 17년간 근무를 하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1980년대에 입사를 해서 17년 정도 근무를 했죠. 회사에서 쭉 생활을 하면서 구매업무 원자재 관세 출납업무 등등을 했어요. 그러다 IMF가 오니 제 위에서 일하던 분들을 명예퇴직 시키고 조기 퇴직자가 생기더군요. 갑자기 제가 책임자 급이 되자 그때 봉급쟁이는 안되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회사생활은 2002년도에 끝을 냈어요.”
처음에는 공구상이 아니라 철물점으로 시작했다. 신연식 대표의 매형이 충북 청주에서 철물점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매형의 말 대로 청주에 내려와서 철물점을 하려고 했다. 그의 고향이 청주이기에 내려가는데 부담도 없었다.
“청주에 내려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주위에서 그러지 말라고 조언을 하더군요. 또 상황도 안되었구요.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들 만나보니 17년을 여기서 살았는데 사업을 해도 여기서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요. 또 청주의 친구들도 기왕 사업할 것 사람 많은 수도권에서 사업해야 한다고 하고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며칠 안되어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공구상을 열게 된다. 공구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전혀 없이 구매업무를 하며 알고 지내던 사람들 연락처만 가진 상태였다.

일하면서 배우니 2년간 고생해

“구매를 했으니 저 스스로 조금은 공구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해서 납품을 다니고 주문을 받으니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다른 회사에서 간단한 펜치나 니퍼를 주문해도 특정 상품만을 고집하기도 하고요. 물건을 잘못 줘서 두 번 세 번 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못 알아듣고 헷갈리고 그러는 경우도 많았죠.”
뭐든지 처음 시작은 고생이라고 하지만 신연식 대표는 많은 고생을 한다. 또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바로 바로 고치며 사업을 한다.
“처음에는 급한대로 가게를 얻었어요. 자본금도 많이 없었고 돈에 맞춰서 가게를 얻었던 거죠. 그래서 첫 가게가 주택가 골목길에 있었어요. 그렇게 가게를 얻으니 물건을 주문해도 차량에 싣고온 물건이 가게에 들이는 것도 힘이 들고 손님들도 가게를 찾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했죠. 그래서 서둘러 가게를 대로변으로 옮겼습니다.”
공구업도 장사이고 장사의 기본은 자리인데 그 법칙도 몰랐던 것이다. 그렇기에 초창기에는 집에 생활비를 거의 가져다주지도 못했다고 한다. 신연식대표의 아내인 권선옥씨가 생활비를 벌며 남편을 응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가게를 얻은 것은 행운

“두 번째 옮긴 곳에서는 길가에 위치한 자리죠. 대로변으로 나오니 성과가 있더라고요. 열심히 하니까 매출도 늘어나고 그런데 또 지하철 공사를 하면서 이전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돈도 없는데 이전할 돈도 없는데 어떻하나 걱정했죠. 그런데 보상이 나오더라고 없는데 용케도 그 보상받은 돈으로 지금의 가게를 얻었죠.”
지금의 신우상사는 큰 아파트 단지 앞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신우상사가 가게를 옮겼을 때는 아파트가 세워지고 인테리어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였다. 그러자 공사관계자들이 제발로 찾아와 물건을 대어 달라고 했다. 이전한 것이 큰 행운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때 수원에 공구상가가 새로이 생겨서 공구상가에서 오라고도 했는데 금액이 컸어요. 사실 대출을 받아 계약을 할려고도 했죠. 그런데 약속 시간이 맞지 않아 계약도 안되고 두 번 세 번 약속 취소를 하면서 계약을 못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하니 공구상가에 가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성공할 가망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이 자리에 오게 된 거고 그때가 2008년 금융위기로 경기가 참 안 좋았는데 저 아파트 덕분에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어요. 운이 좋았죠.”

중소기업청 도움으로 위기 극복

운이 따르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정부나 기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중소기업청에서 기업인들을 상대로 저리로 대출을 해주는 제도를 이용한 것이다.
“정부제도의 도움을 받아서 위기를 극복했죠. 거기 제도를 한 세 번 이용했어요. 급할 때마다 용케 돈을 빌려 써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또 그래서 지금 가게 물건을 채울 수도 있었던 거예요. 중소기업청 양반이 대출을 해주는데 저를 보자마자 볼 것도 없다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쫙 빼입고 승용차 타고 오는데 저는 대출 받을 때 화물차 끌고 점퍼차림에 갔거든요. 진짜 소상공인이라고 하며 바로 대출을 해주더라고요. 가게를 확장하는 밑천이 되었던 거죠. 창업할 때 제 돈은 2,000만원 들였죠. 이스타나 밴 하나 사고 남은 1,4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가게 얻고 나머지 돈으로 시작을 한거죠. 더 많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에서 빌려주는 돈으로 극복했어요.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관련 제도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서비스 마인드를 가지며 영업을 했다. 일반인들이 찾아와 형광등 하나를 사더라도 요청을 하면 형광등을 교체해주기도 하고 수도꼭지를 배달하면서 교체해 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지역의 주민들이 찾는 공구상이 될 수 있었다.

공구영업의 포인트는 사람

“옛날 직장에서 구매담당으로 있을 때 만났던 사람들 만나며 영업을 했어요. 생각해보면 처해진 입장이 뒤바뀐거죠. 그러니 세상 살면서 사람한테 야박하게 하면 안돼요. 다행이 제가 구매 업무를 볼 때 우리 회사 납품을 하시는 분들 야박하게 하지는 않았거든요. 어음결제를 하더라도 200만원 넘어가면 6개월 어음 끊으니 반으로 나누어 쪼개서 요청을 해라. 그럼 개월수 짧은 어음을 받아간다. 이런 조언도 해드리고 그렇게 거래처 분들게 잘해드리려고 노력을 한 것이 나중에 다 돌아오더라고요. 그분들이 업체 소개도 시켜주시고 거래처 소개도 시켜 주시고 그렇게 소개 받은 분들 2번 3번 다니며 인사드리니 거절하지 않고 주문을 하시더라고요.”
물론 영업을 하면서 문전박대 당하고 만나도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속도 상하고 자존심도 상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찾아가고 안되더라도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결국 탄탄한 매출을 올리며 지금의 가게를 만들 수 있었다.
“희망을 갖고 영업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해요. 소개를 받더라도 내가 잘하려고 노력해야 하고요. 한번 잡은 거래처는 놓치지 않아야 해요. 그러다보면 구매하던 사람이 이직을 하더라도 다른 회사에서 나를 불러 견적서 넣어 보라고 하고 그러더라고요. 장사란 그런 것이더군요.”

글, 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