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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내 인생 후회없다 - 대구 부흥기공사 장희 사장




“내 인생 후회없다. 배우고 겸손하니 복은 저절로”

대구 부흥기공사 장희 사장



북성로에서 열세살에 공구인생 출발 … 검정고시 거쳐 쉰일곱 올해 대학원 입학
술담배 멀리하고 선함과 신용 하나로 우뚝 … 아들아! 아빤 후회없이 살았다


장희 사장의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얼마 전부터 시력이 약해진 탓도 있지만 ‘산다는 게 뭘까’ 감회에 젖다보니 자꾸 감성적이 되어간다. 스무살, 뜨거운 만큼 외로웠던 그때, 아내를 만났고 세상에 단 하나 기댈 곳이 생겼다. 환희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그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올해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이어가게 됐기 때문이다.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검정과 야학을 거치며 배움과 사업을 이어왔는데, 쉰일곱에 대학원이라니. 사업터에는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땀을 흘리고, 아내는 여전히 그만을 최고라고 응원한다. 지금의 모습에 감사하고 벅차다는 그. 늦겨울 바람이 아직도 마르고 찬 가운데 먼 눈을 거둬 지난 세월을 한참 털어 놓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 장희 부부는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공구상을 한다면 ‘장희’처럼.


검단동 장희를 찾아라

“공구판은 거칠어요. 욕도 많이 하고 사람들도 세죠. 그렇다고 다들 그렇게 해야 이 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어요. 약속을 지키고, 내 자신이 할 수 있는만큼 아끼고 성실하게 사는 것, 그렇게 하니까 한 계단씩 올라갈 수 있던 걸요.”
대박은 없었다 했다. 어디 한 군데 납품 대박이 터져 큰돈이 들어온 적은 없지만 그의 부흥기공사는 업계에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알토란이다. 사실 그와의 만남은 약 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구상의 전형적인 성장 모델이 될 만한 사람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북성로에서 오랫동안 일한 모 씨가 ‘검단동 장희를 찾아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맨주먹으로 시작했지만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람이 참 곱다. 거기다 딱 한 계단씩만 오르며 자기 자신이나 가정 농사가 잘 지은 밥처럼 차지고 윤이 난다”고 했다. 직접 그의 얘기를 들어볼 요량으로 봄호를 준비하며 그를 만났다.
“내가 사연이 많아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시는 바람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하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보기에 딱하던지 ‘북성로에 가면 먹이고 재워는 준다’고 말해줘 오게 됐어요. 그 북성로 가게 사장님이 당시 대학도 나오고 사업도 잘 하던 분이셨죠. 군용 모포를 깔고 자며 7년간 A/S 기사로 일했어요. 나중엔 그 가게가 다른 데 인수되고 그때부터 월급을 받았습니다. 15만원. 먹고 싶던 콜라 하나, 음료수 한 병 사 먹지 않고 월급 그대로 3년을 모았습니다. 500만원이 되대요. 그돈으로 두 평짜리 점포를 얻었습니다.”
열세살 소년은 스물둘 청년이 되어서야 자기 가게를 가지게 됐다. 아버지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도, 가족을 고통스럽게 하는 인생도 살지 말자 다짐했다. 지나온 세월을 한 줄로 요약하듯 그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말과 말 사이 빈 공간에 다 표현 못할 외로움과 고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개업을 해서는 열심히 전동공구 A/S 일만 했다. 요즘 수리는 부품교체지만 당시는 제품을 다 뜯어 분해 조립해야 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목욕탕에 가면 손톱 밑에서 검은 기름이 채다 빠지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그의 얼굴은 천상(賤相)이 아닌 귀상(貴相). 워낙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성실해서인지 기름바닥에 구른 사람임에도 얼굴은 뽀얗고 선한 인상이 풍겼다. 그런 모습에 반한 사람이 있었으니 지금 그의 부인 김정희 씨다. 두 사람은 첫눈에 스파크가 튀었다.

夫婦, 인생 최고의 파트너

장희 사장에게 부인 정희 씨는 참 특별한 사람이다. 열세살에 집을 떠나 스무살 넘도록 홀로였던 그. 거친 공구골목에서 어렵게 버텨가던 그에게 정희 씨는 유일한 안식처였고 느티나무였다. 자신을 지상최고로 여기는 여자에게 남자는 없던 힘도 낸다던가. 장희 사장은 그때부터 더 열심히 ‘어떻게 하면 이 공구업을 더 잘 할까’ 연구하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신용과 정성으로 무장해제를 시켰다.
자그마한 가게에서 아내 김정희 씨는 기둥 노릇을 아주 튼실하게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게를 지켰다. 첫째를 낳고도 일주일, 둘째를 낳고도 일주일만에 가게에 나와 앉았다. 그래도 신이 났다. 아내 김정희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남편에게 고운 눈을 흘겼다.
“남편이 한 눈 팔지 않고 일과 가정에만 충실하니까 늘 멋져 보여요. 이 공구업은요, 자칫 한 눈 팔면 한번에 내려앉는 장사에요. 술, 담배, 노름, 이런 것과는 거리도 멀고, 고객과의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남자에요. 그런 남자를 어찌 안 도와줍니까.”
술담배를 하지 않는 장희 사장은 납품을 성사시키면서도 술접대 없이 해냈다. A/S를 워낙 믿을 수 있게 해주니까 손님들이 소개에 소개를 이어주며 납품처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장희 사장은 “아내 덕분에 IMF도 넘겼다”고도 했다. 공구상 재정을 아주 물 샐 틈 없이 꾸려 IMF는 물론 이후 어떤 자금 압박도 잘 헤쳐갈 수 있었다. ‘무리하지 않고 방만경영하지 말자’는 장희 사장의 기준을 아내가 멋지게 현실로 만든 것이다.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내 인생 최대의 대박은 아내”라고 말하는 장희 사장. 그 배경에는 부흥기공사의 성장도 있지만 그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원없이 하도록 밀어준 데도 있다.

여보, 나 공부하고 싶어

“검정도 치고 야학도 다니며 정규학력을 땄어요. 결혼 직전 대학에 입학했는데, 아내가 첫째를 임신해 배가 부른데도 저녁이면 가게를 맡기고 학교를 갔습니다. 공구상은 저녁이면 물건을 다 안으로 들여놔야 하잖아요. 그걸 아내가 저 학교 보내놓고 무거운 몸에 매일밤 혼자서 했습니다. 한번도 불평한 적이 없었어요. 첫애가 태어나고 제가 졸업학점을 채웠을 때 둘이서 손을 잡고 두어 시간을 울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이렇게 부모도 되고 우리 둘이 세상을 헤쳐가는구나 하면서.”
대구 북성로에서 사업을 하던 부흥기공사는 2001년경 검단동 산업용재관으로 옮겼다. 지하 100평 창고에 1,2층 합쳐 연건평 80여평의 매장이다. 직원 수는 6명. 지금도 힐티, 보쉬 할 것 없이 전동공구의 속은 훤히 눈 감고도 떠올린다. A/S 기술은 장희 사장만의 것이 아니다. 아내 김정희 씨도 남편 못잖은 A/S 전문가. 요즘이야 직원들이 있어 손댈 새는 없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현장을 뛸 수 있다. 부흥기공사의 성장배경은 바로 이것이다. 제품의 기술원리며 속을 아는 것. 즉 머릿속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이 제품의 만들어진 단계부터 마지막 최종 사용자에게 어떻게 쓰이는지를 훤히 알기 때문에, 이런 지식이 공구상 운영의 가장 든든한 재산이 된다.
물론 큰 기업처럼 부흥기공사를 더 키울 기회도 있었다. 그러지 못한 이유로는 너무 열심히 일만 해 한때 건강에 이상이 왔고, 이즈음 의사의 권유로 삶의 속도를 줄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우리의 삶에서 돈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공구상 … 이 정도면 성공

“일에서 후회는 없어요. 더 이상 아끼고 성실하지 못할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가 늘 가게에만 있어서 아이들 클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려요. 큰애가 한양대 전기과를 갔는데, 고등학교 때 다른 과목은 다 성적이 좋은데 언어가 성적이 안나왔어요. 생각해보니 어릴 적 같이 책 읽고 대화 많이 못해준 게 원인이 아니었나 싶었어요. 아! 돈이나 일보다 가정과 아이들이 먼저다 싶었죠. 지금 큰애가 저렇게 와서 아버지 고생한다고 같이 돕는다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둘째는 경영학 전공해요. 나중에 같이 할 것 같습니다. 더 부러울 게 없어요. 예전엔 내가 참 복이 없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제가 아내복도, 자식복도 많은 사람입디다. 감사해요. 모두.”
그는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다. 공구시장이 워낙 경쟁도 심하고 시장도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사업에 어떤 변화를 줄까 고민이다. 아들과 함께 해외시장 자료를 뽑아보며 안전용품 시장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무리하지 않고 한계단씩, 성실하게, 그리고 꼭 행복하게! 그렇게 살라고 아이들에게 주문합니다.”
- 장희 -

“네 아버지만큼만 살면 성공이다. 그러고도 여력이 된다면 더 크게 기업으로 만드는 꿈을 꾸어달라 말합니다.”- 아내 김정희 -

남편 몰래 인근의 불우한 학생을 대학갈 때까지 뒷바라지 했다는 아내 김정희 씨. 어려운 이웃을 보면 가슴 한 켠이 곧잘 시리고마는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결국은 복이 되어 온 것 같다고 장희 사장은 웃음을 보였다. 그 웃음 그대로 이들 가족의 행복 경영법이 이어지길 바란다.

글, 사진 _ 서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