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끼로 이웃사랑 나눕니다”
무료급식소 운영 포항 철탑종합상사 조도희 대표
노령 인구가 많은 포항시 남구의 한 읍내. 정오가 가까워가지만 겨울 공기는 여전히 쌀쌀하다. 이 동네 어르신들은 점심 무렵이면 목도리 감아 매고 삼삼오오 모여 들르는 곳이 있다. 지난 가을에 문을 연 작은 무료급식소. 혼자 밥먹는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따뜻한 정으로 감싸주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독거노인과 소외계층 등 하루 100~150명이 이곳을 찾지만 정작 누가, 왜 이곳을 운영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밥 한끼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람. 과연 누굴까 기대하며 포항으로 향했다.
읍내 작은 무료급식소 ... 주인공은 공구상 사장님
포항시 남구 연일읍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무료급식소. 오늘 메뉴는 따뜻한 잔치국수다. 40년 식당 운영 노하우를 가진 주방장에 호흡을 맞춰 음식을 담아내는 손길이 분주하다. 갖은 재료로 국물을 낸 육수가 설설 끓고, 면은 쫀득하니 알맞게 익었다.
조미료 쓰지 않은 김치는 알맞게 익어 식감을 더한다. 12시 전부터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주민들은 국수 한 그릇에 웃음 한 사발을 덤을 얻고 자리에 앉는다. 단출한 한끼 식사지만 운영자들의 정성이 들어가 맛이 일품이다.
김모 할아버지(76)는 “거의 매일 이곳에 온다”며 “밥이 없어서 오는 게 아니라 혼자 먹기 외로워서 이곳에 온다”고 한다. 이모 할머니(75)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오는 게 부끄럽고 눈치 보였는데 지금은 동네 친구들과 바람 쐬는 기분으로 와. 누가 이렇게 하는지는 몰라도 참 고마워. 정말 고맙지.”
마음까지 녹이는 따뜻한 한 끼를 매일 100여 명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수소문 끝에 알아낸 이 선행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인근 공구상 사장님이었다.

철탑 아래 문을 연 특이한 공구상
철강로를 따라 포항철강공단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철탑 6~7개가 들어선 구역이 한눈에 보인다. 그 아래 위치한 철탑종합상사 조도희 대표가 주인공이다. 영업사원 한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한다.
“동! 지!”
조 대표도 이에 질세라 “동지!”하고 우렁차게 답한다. 매장에 자주 들르는 사람들끼리 부르는 호칭이다.
“사장이나 대표는 덕망이 있고 마음 큰 인물을 지칭하는 말인데 나는 아직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동지’라고 부르고 있지요.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오. ‘동지’는 김구 선생님이 제일 먼저 쓴 말
이니까요.”
사람들은 이곳을 ‘특이한’ 공구상이라고 기억한다. 위험해 보이는 철탑 지구에 어느 날 갑자기 문을 연 공구상. 지금은 규모를 넓혀 공구, 철물은 물론 잡화, 담배, 과자 등 없는 것이 없다. 사장이라고 불리기 싫어하는 사장님은 갑자기 국민의례를 빵빵하게 틀거나 애국가를 제창한다. 물건값을 깎고 싶으면 노래 한곡으로 협상할 수 있다. 그러다가도 영업자들이 들르면 식사는 했는지, 목은 안 마른지 확인하며 먹을 것 마실 것을 잊지 않고 챙겨준다. 손님을 위한 공짜 커피나 음료수는 기본이다.
젊은 시절 광부 생활 ... 오로지 인내심으로 버텨
조도희 대표는 공구업과 전혀 인연이 없었던 인물이다. 제대 후 곧바로 강원도 장성으로 향해 광부가 됐다. 그가 일했던 장성 광업소는 지금은 폐광됐지만 당시 동양에서 제일 큰 탄광으로 6000여 명이 일하는 대규모 산업지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제가 집안에 가장이었는데 제대하고 할 일이 없는 거예요. ‘저거 장남인데 집에서 놀고 있다’ 이 소리를 듣는 게 부끄러워서 낮에는 못나가고 밤에만 잠깐 밖에 나갔다가 오고 그랬어요.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보따리 싸서 강원도로 갔죠.”
광부 생활은 일반인이 견디기에는 가혹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동료들은 며칠 하다가 집으로 떠나기 일쑤였지만 조 대표는 가족들 생각에 오로지 인내심 하나로 버텼다.
“군사 훈련이 100명 중 10명 그만둔다면 광부 생활은 그보다 몇 배는 힘듭니다. 당시 80명 같이 들어갔는데 40명이 보따리 싸서 울면서 집에 갔어요. 먼지가 많아서 숨을 못 쉬니까. 코로 숨을 쉬려
면 꽉 막힌 먼지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꺼내야만 해요. 먼지가 눈에 들러붙으면 손으로 눈을 벌려야 뜰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배운 건... 인내력!”

대형슈퍼로 전성기 보내고 ... 철탑 아래 재기
1994년 광산이 문을 닫았다. 45살 젊은 나이에 뭘 해야 하나 막막한 마음에 포항으로 내려와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이 분식점이었다.
“국수~ 된장찌개~ 돈가스~ 2000원, 2500원~~~ 허허... 이것도 몇 달하다가 잘 안 됐어요. 다음으로 한 게 제일제당 대리점이었죠. 외환위기 때 어음 부도도 맞았지만 결정적으로 이마트가 포항에 문 열면서 가격경쟁에 밀려 사업을 접었죠. 경험이 부족했어요.”
6년 동안 지속했던 대리점을 정리하고 이번에는 300평 부지를 얻어 대형슈퍼마켓을 시작했다. 그의 안목이 통해서일까, 하루 매출만 1, 2천 만원을 올리며 밤이고 낮이고 피곤한 줄 모르던 시기였다.
“사람은 이렇게 전성기일 때 실수를 하나 봐요. 돈을 많이 들어오니까 주변에서 돈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 막 빌려 준거예요. 어떤 사람한테는 11억을 빌려줬는데 그게 화근이었죠.”
회복하기에는 너무나 큰 타격이었다. 하지만 조도희가 누군가, 광산에서 버텨낸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아닌가. 인적 드문 철탑 아래 30평짜리 땅을 얻었다.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 새로운 승부처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여기는 차가 많이 다닙니다. 이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뭘 필요로 하는가, 그걸 팔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한 끝에 공구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죠.”
염원이 있으면 무쇠도 녹인다
사회 환원이 최종 목표
공구업에 발을 들인지 올해로 8년째. 어찌보면 신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매출 상승세는 범상치 않다. 허름하게 시작한 30평에서 재작년 200평 규모로 매장을 넓혔다. 포항철강공단 1~4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철탑공구의 고객이다.
“처음에는 장갑 한 켤레도 못 팔았어요. ‘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자나 깨나 생각했죠. 염원은 무쇠도 녹인다고 하잖아요. 해야겠다 무조건 생각하니까 되더라고요.”
그의 핵심 비결은 첫째, 손님이 자신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 둘째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구색을 갖추는 것이다.
“내가 손님을 못 기억해도 손님은 나를 기억하면 또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 단순히 싸게 파는 것보다 좋은 위치에서 다양하게 많이 파는 게 더 중요하죠.”
돌이켜보면 이렇게 나누며 사는 게 진정 사는 이유가 아닐까라는 게 조 대표의 말이다.
“돈은 내가 벌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더라고요. 내가 잘해서 버는 게 아니라 누군가 도와줘서 되는 거라는 것. 내 만족보다 사회환원이 더 가치 있다는 걸 크게 한방 맞고 깨달은 거죠... 나는 활빈당! 고바우 쌀장사가 나를 따른다! 하하하”
매출이 더 올라가면 공구상 확장과 소외 계층을 위한 시설 확충에 쓰고 싶다는 조도희 대표. 끝까지 얼굴을 가린 채 그늘에서 움직이고 싶다는 말에 굳은 결의가 느껴진다.
글, 사진 _ 배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