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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와 바비큐의 절묘한 만남



공구와 바비큐의 절묘한 만남

철공소 콘셉트로 매장마다 공구 100여개
한국식 바비큐 레스토랑 철든놈




“철든놈은 한국식 바비큐 문화를 창조하는 구이 벤처 기업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구이기를 만들기 위해 젊은이들이 뭉쳤다. 직접 구이기 개발부터 매장 디스플레이, 요리까지 일관된 콘셉트로 ‘구이의 혁명’을 알리는 박경준 대표·박경호 이사의 독특한 창업스토리를 들어봤다.




참나무로 초벌해 담백하고 맛있는 한국식 바비큐

바비큐 방식으로 고기를 구워먹는 퓨전 레스토랑이 요즘 인기다. 바비큐는 열을 간접적으로 이용해 서서히 조리하고 훈연을 통해 스모키한 향이 배이도록 한 요리다.
“서양에서는 바비큐 요리를 많이 해먹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데 여긴 바비큐 스타일로 한국식 구이를 먹을 수 있어요.”
꼬치에 끼운 삼겹살, 목살, 오리고기, 안심 등이 주 메뉴다. 구이기에 고기를 넣어 숯불에 간접적으로 익혀 먹으면 기름기가 쏙 빠져 담백하면서도 고유의 육질을 맛볼 수 있다. 주문한 고기는 참나무 장작에서 80% 초벌 된 상태로 나온다.
“초벌하는 시스템이 관건이에요. 저희는 고기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참나무 장작으로 초벌 하는 기술을 개발했어요. 다른 데선 맛볼 수 없는 고기 맛이 여기서 결정 되죠. 참나무 초벌은 4시간 정도 걸려요. 고기를 잘라 초벌하고, 그걸 다시 꼬치에 끼워서 손님에게 드려요. 구이기에 올려놓을 테니 이따 한 번 맛보세요.”
참나무에 오랜 시간 초벌 된 담백한 바비큐형 구이. 특별한 맛에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 젊은 여성과 외국인 손님까지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연기 없는 구이기 개발로 시작된 ‘철든놈’

철든놈은 보통의 음식점답지 않게 입구부터 색다르다. ‘구이에, 구이를 위한, 구이에 의한, 구이혁명가 철든놈’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현수막 아래 커다란 철문이 오는 이를 반긴다. 철문을 밀고 매장을 들어서자 커다란 밀링머신과 함께 각종 공구들이 눈길을 끈다. 마치 공장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당장이라도 헬멧을 쓰고 진열된 공구를 들고 일해야 할 것 같은 철공소 콘셉트. 그러나 가게 안에는 고기향이 가득하다.
“철공소 콘셉트로 꾸민 이유는 고기 굽는 구이기의 제작 스토리를 매장 안에 담았기 때문이죠. 여기선 저희가 직접 개발한 구이기만 사용하거든요.”
철든놈의 시작은 단 하나의 구이기 제작이 계기가 됐다. 이 구이기는 4년 전, 평소 개발에 관심이 많던 박 대표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고기를 구울 때면 항상 연기가 나잖아요. 어떻게 하면 연기 안 내고 깔끔하게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저희만의 바비큐 구이기를 생각해냈죠. 숯이 고기 아래에 있는 게 아니라 옆에 위치하도록 하면 기름이 숯으로 떨어지지 않아 유증기가 발생하지 않거든요.”
처음엔 독특한 판매 아이템으로 구이기를 개발했다. 서울 문래동 철공소골목에 월세로 작업실을 마련했다. 경영학, 물리치료학, 신문방송학 등 제조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전공을 가진 4명의 창업 멤버들이 모였다. 모눈종이에 서툴게 손으로 스케치를 해가며 구이기를 설계하고 재료 구입부터 용접, 조립까지 직접 하나하나 배워가며 제작을 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듬해 구이기가 완성됐다. 연기가 나지 않는 구이 방식으로 특허도 따냈다. 그러나 생각보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는 힘들었다.
“수작업을 하다 보니 원가가 높았어요. 금형화를 하기에도 비용이 많이 들고, 구이기 수요 또한 많지 않았어요. 사업을 포기해야할 뻔 했었죠. 그런데 그냥 버리기엔 구이기로 구운 고기 맛이 너무 좋은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구이기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손님에게 직접 구이 맛을 보여주는 게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철든놈을 차리게 됐죠.”



철공소 분위기 이색 고깃집 … TV 타며 대박인기

2012년, 구이기 작업실은 고깃집 ‘철든놈’으로 탈바꿈했다. 연기나지 않는 구이기가 메인이 됐다. 구이를 해 먹기 위해 환풍기도 필요 없었고, 필요한 테이블마다 세팅해 놓을 수 있도록 제작되어 옮기기도 편리했다. 매장 콘셉트는 철공소 분위기로 구이기 개발부터 요리까지 일관된 그들의 창업 스토리를 담았다. ‘철든놈’이라는 이름은 철공소의 구이기 제작자이자, 좀 더 성숙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구이기 제작에 활용된 여러 가지 공구들은 곳곳에 진열해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도 있게 했다. 운 좋게도 창업 당시 문래동 철공소거리는 점차 예술가들의 발길이 닿는 ‘예술촌’으로 각광 받으면서 방송을 탔고, 이때마다 이색 음식점으로 철든놈이 등장하게 되면서 인기가 많아졌다.
“Ystar ‘식신로드’, KBS ‘생생정보통’과 ‘VJ특공대’, SBS ‘8시뉴스’, 올리브TV ‘테이스티로드’ 등 TV뿐만 아니라 신문과 잡지에도 많이 보도 됐어요. 구이기 탄생 과정을 가게 안에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접목시켜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게 된 것 같아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을지로에 확장 인테리어 한 철든놈 ‘제1공장’을 열었다. 철공소답게 직급도 공장장, 소장, 반장, 부반장 등으로 구성했다. 점차 매장을 늘려 현재는 직영점 3개, 가맹점 6개 등 총 9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단기간에 매장당 2억 원대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며 대박 외식브랜드로 자리 매김 했다.




매장마다 공구 백여 개 … 직접 설계부터 용접까지

구이기 제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철든놈은 중소기업청의 공식인증을 받은 기업부설연구소(구이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공대 석사출신들로 구성된 연구원들은 ‘어떻게 하면 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바비큐 기술을 연구, 제조하고 있다.
“구이기는 계속 발전하고 있어요.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보이지만 그간의 기술이 집약되어있죠. 구이기를 구성하는 각 부품들의 종류와 비율이 굉장히 중요해요. 기름받이와 숯케이스간의 거리, 구이기의 높이, 각도, 무게 등 작은 부분들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고기의 맛이 달라지거든요.”
최근 22번째 구이기를 개발해냈다. 좀 더 편리하고 좋은 맛을 내는 구이기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 3D작업으로 설계를 하고 구이기 틀을 재단한 뒤 용접, 조립, 칠까지 거치는 과정에는 다양한 공구들이 사용된다.
“수공구들을 주로 사용해요. 티그용접기, 핸드그라인더, 망치, 콤프레샤, 드릴 같은 것들을 기본적으로 많이 쓰고요. 드릴링머신도 많이 써요. 이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건 전동드릴이고, 함마드릴은 콘크리트 벽도 뚫을 수 있어 유용하죠. 갖고 싶은 건 레이저예요. 티그용접기 대신 쓸 수 있는 레이저가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비싸서 못 사고 있지만요.”
사업초기부터 모아온 공구들은 현재 수백 가지가 넘는다. 이 공구들은 철든놈의 콘셉트에 맞게 매장 인테리어에도 활용하고 있다. 1층에는 구이박물관도 마련했다. 스패너, 바이스, 펜치, 스트리퍼, 용접기, 용접면, 드릴링머신, 망치 등 매장마다 공구 100여 개씩을 전시해두고 구이기를 수리할 때는 바로 꺼내 쓰기도 한다.
매장 인테리어를 할 때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저희가 직접 매장 인테리어를 했거든요. 철근을 잘라서 선반을 만들 때, 용접공을 고용하기엔 비용이 많이 들어서 직접 용접을 했어요. 테이블만 만드는 거니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용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얼굴만 용접면으로 가리고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용접을 한 거예요. 팔다리가 빨갛게 익어버렸죠. 그 때의 모습은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어요.”
그들에게 공구는 어떤 의미일까.
“조력자죠. 디딤돌이자 지렛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까요. 구이기 제작은 공구가 하는 일이고, 손은 거들 뿐이라고 생각해요.”
박 이사는 새로운 공구를 보면 새 신발을 신는 것보다 더 좋다고 말한다.
“다양하고 새로운 기능에 감탄하게 되는 공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좋은 공구는 일손을 줄여주거든요. 탐나는 공구들이 많아서 하나씩 사 모으고 있죠.”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구이혁명이라는 타이틀로 국내와 해외 진출까지 꿈꾸고 있는 철든놈들. 재밌는 이야기에 빠지다보니 어느덧 구이기에 올려놓은 고기들이 노릇노릇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