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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우리가 몰랐던 클래식 이야기 ① 혁신의 아이콘, 베토벤
‘악성(樂聖)’ 음악의 성인이라 불리는 베토벤. 괴팍하고 비사교적이기만 했던 성격으로 유명한 베토벤은 어째서 음악의 성인이라 불리는 것일까? 그 이유를 시대적 상황과 그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자.

2025년, K-컬처의 영향력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영향으로 더욱 증폭되었다. 작년 미국 할로윈 시즌 가장 인기 있는 코스튬 중 하나가 케데헌의 캐릭터를 따라 하는 것이었고 OST <골든>에 나오는 한국어 가사의 의미를 알고자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늘었으며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케데헌과 연관이 깊은 갓, 호랑이 등의 한정판 ‘굿즈(문화 콘텐츠 관련 파생 상품)’를 사기 위해 박물관에서는 보기 힘든 오픈런(매장이 열리자마자 구매하는 현상)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렇듯 문화는 인종과 언어가 다른 모든 인류를 사랑 정의 희망 등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가치에 하나되게 하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고향 오스트리아 빈의 베토벤 동상
우리가 잘 아는 클래식 음악 또한 문화의 큰 물줄기 가운데 하나다. 클래식은 크게 3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넓은 의미에서의 클래식은 중세부터 지금까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음악가들에 의해 발전해 온 서양 전통음악을 말한다. 좁은 의미에서는 서양의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의 음악을 흔히 클래식(고전주의) 음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현대에는 락 재즈 팝 등의 대중음악과 구별되는 의미로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의 성악곡, 실내악 등을 통틀어 클래식이라 칭한다.
클래식은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영화나 방송에서 비장한 분위기를 위해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을 자주 사용한다. 유럽연합(EU) 공식 찬가는 통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를 차용한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자동차 후진 경고음은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클래식 곡이다. 방송이나 유튜브 등에서 갑작스런 절망감이나 위기의 순간을 나타내는 효과음으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교향곡의 주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음악은 모두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 작곡한 곡이다. 베토벤은 클래식에 대해 문외한 사람들도 알고 있는 모차르트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가 중 한 사람이다. 궁정의 테너 가수이자 바이올린을 가르쳤던 아버지로부터 아주 엄격한 음악교육을 받았던 베토벤. 그보다 14살 연상인 모차르트조차 베토벤을 ‘곡을 잘 쓰는 애’라고 생각했을 만큼 그는 어릴 적부터 작곡에 큰 재능을 보였다. 학창 시절, 음악시험에 자주 나왔던 문제 중 하나가 음악가들의 별명을 맞추는 것이었는데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 모차르트는 음악의 신동(천재)이라고 외웠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베토벤의 별명은 ‘악성(樂聖)’, 다시 말해 음악의 성인이라 불린다.
성인(聖人)이란 인류 역사에 큰 가르침을 남기고 보편적인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인물을 뜻하는 말이다. 흔히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공자, 예수를 가리켜 4대 성인이라 한다. 일부 가톨릭에서는 종교적인 업적이 뛰어난 인물 중에서 일부에게 성인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음악의 성인이라는 베토벤은 과연 인류가 보편적으로 존경할만한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까? 베토벤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괴팍했으며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 탓에 평생 결혼도 하지 못했다. 서른한 살에 귀가 멀게 되자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 제자의 어머니가 주선하여 귀족들의 모임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는데, 술과 담배를 하면서 어수선한 모습에 피아노 뚜껑을 덮으면서 “음악을 모독하지 마시오”라며 나가버렸다는 일화는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베토벤은 어떻게 자신을 후원하는 귀족들 앞에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왕족과 귀족들의 특혜는 늘어갔지만 평민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참다못한 평민들은 의회로 들어가 귀족들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위기감을 느낀 왕과 귀족들은 군인들을 불러들이면서 파리의 분위기는 매우 살벌해졌다. 평민들은 자신들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총칼을 들이대는 모습에 분노했고 결국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다. 대혁명으로 시작된 계몽사상은 이후 베토벤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 예술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것이다.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음악의 신동으로 불렸지만 청소년 시기 어머니의 죽음과 젊은 나이에 귀가 머는 경험을 한 베토벤. 이후 그는 더욱 괴팍해졌고 굶어 죽어도 자신의 음악 앞에서 당당하려 했다. 과연 그런 베토벤이 음악의 성인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그의 삶이 아닌 음악 안에서 찾아야 한다.

흔히 ‘운명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베토벤 교향곡 5번. 그의 말년에 비서로 일한 안톤 쉰들러의 회고록에서, 베토벤에게 교향곡 5번의 첫 네 음에 대해 질문하자 ‘이것은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라고 말했다 적은 것에서 운명 교향곡이라는 별칭이 시작됐다. 이후 그의 회고록이 일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뢰도가 낮은 기록이라 여겨지지만, 고난에서 극복으로 이어지는 서사적인 곡의 구조는 신뢰도를 떠나 운명이라는 해석에 설득력을 갖게 한다. 또한 일반 교향곡에서는 악장과 악장 사이에 연주자들이 쉬어가는 ‘휴지부‘가 있는데 운명 교향곡은 3악장과 4악장 사이에 휴지부가 없다. 3악장 후반부는 현악기와 팀파니에 의해 뚜렷한 결말 없이 진행하다가 마치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듯 ‘크레센도(점점 세게)’가 이어지면서 4악장의 화려한 도입부가 시작된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던 어두운 터널 끝에서 광명이 비추듯, 완전한 승리를 노래하는 웅장한 함성이 펼쳐진다. 1악장에서부터 3악장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쌓인 감정의 응어리들이 4악장이 시작됨과 동시에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베토벤의 의도를 이해하게 된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지휘 _ 클라우디오 아바도
연주 _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824년에 완성한 교향곡 9번은 독일의 작가 프리드리히 쉴러의 <환희>라는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1793년 스물두 살의 베토벤은 이 시에 음악을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1811년 개시부 선율을 작곡했고 1817년 교향곡 9번의 첫 소절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베토벤이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한 건 1822년 12월 런던 필하모닉 소사이어티로부터 작곡 의뢰를 받은 뒤부터다. 교향곡 9번이 완성된 1824년, 그는 조카의 양육권으로 3년간 처절한 다툼을 벌이면서 그토록 미워했던 제수 요한나에게 신년 인사를 보냈다. 화해를 잘 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베토벤. 어쩌면 인생 후반부의 베토벤은 교향곡 9번에 쓰인 쉴러의 <환희>라는, 인류애를 그리는 시를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작곡한 합창 교향곡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기악음악의 정수였던 교향곡에 성악음악을 넣은 작품이다. 아무도 두 음악 장르를 하나로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던 시절 베토벤은 두 장르를 하나로 만들었다. 이전까지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불경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 많은 후배 작곡가들은 베토벤의 도전을 보고 관습적이고 형식적인 음악에서 탈피하기 시작했고 결국 다양한 클래식 장르가 탄생하게 된다. 청력을 상실했다는 절망적 환경을 초월하며 시대를 앞서 나가는 교향곡 9번은 후대에 음악의 다양성의 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처럼 베토벤은 언제나 혁신적이었고 남들이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갔으며 남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완성하면서 클래식 음악사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줬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베토벤을 음악의 성인이라고 칭송하는 이유이다.
글 _ 김성호 크레텍 총무팀 대리 / 자료참고 _ 노먼 레브레히트 <왜 베토벤인가>, 금난새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송사비 <클래식 음악야화>, 김기홍 <오늘의 감정 클래식>,
이채훈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 일러스트 _ 구글 Gem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