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이 남자의 사업법] 유타컵밥 송정훈 대표
나는 한국 사회에서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성적표를 보면 죄다 ‘가’뿐이다.
춤추는 게 너무 좋아서 미친 듯이 춤만 추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도 나도 단 한 번도 내가 못났거나 문제아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 자신이 속한 상황이 전부라고 지레짐작하고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 명함을 보면 이름 아래에 “sexy hot boss”라고 적혀 있다. 10여 년 동안 컵밥을 운영해오면서 나와 쭉 함께한 명함이다. 자칫 우습게 보이거나 장난처럼 느껴질까 봐 아내는 지금도 이 명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송정훈’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나를 각인시킬 수 있을까 오래 고심한 끝에 지은 닉네임이다. 지금의 나를 만난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내 명함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 내가 10년간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잘 알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미국 유타주에 대뜸 푸드 트럭을 세웠다. 유창한 영어는커녕 생존 영어도 겨우겨우 내뱉을 정도의 터무니없는 실력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30대 중반의 나이였고, 전 재산은 1,500만 원이 전부였다.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두 명의 동업자들과 함께 셋이서 트럭을 꾸미고 간판을 올렸다. 무슨 용기에서 이런 대담한 일을 벌였느냐고 묻는다면 일단 마음먹은 일은 뭐가 됐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이라고 대답하겠다.
한국 음식을 푸드 트럭에서 팔겠다는 아이디어는 아주 사소한 계기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하루 종일 세일즈를 하고 피곤에 절어 텔레비전을 켰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노량진의 컵밥을 다루는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방송에 나오는 컵밥은 공부하는 학생들이 싼값에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며 먹을 수 있는 훌륭한 한 끼 식사처럼 보였다. 싸고 맛있고 빠른데다가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그대로 묻히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아까웠다. 다큐멘터리를 볼 때만 해도 그저 남의 상권이자 남의 이야기였던 컵밥이 마치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고, 한식 푸드 트럭이라는 사업 아이템으로 탄생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힘들지 않은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하지만 힘들다는 말이 괴롭거나 불행하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었다. 실행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기회가 오는 순간을 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기회가 보였을 때 단순히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게 컵밥이라는 기회가 우리에게 다가왔고,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가끔씩 어떻게 하면 그렇게 빠르고 강단 있게 선택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실패가 두렵지는 않은지에 관한 질문이 이어진다. 나도 당연히 실패가 두렵다. 실패라고 생각하면 본능적으로 두렵기 때문에 누구나 주저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실패’라는 단어를 입에 잘 내지 않는다. 내게 추진력은 용기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자세와 더욱 깊은 관련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과 미국에서의 삶을 비교해 보자면, 특히 한국 사람들은 자기 계발에 굉장히 열심이다. 그리고 ‘완벽’에 대한 강박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듯하다. 온갖 강연을 다 찾아다니며 공부한다. 나 역시 한식 푸드 트럭을 열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서 완벽하게 준비하겠다는 명분으로 차일피일 지냈다면 영영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완벽이라는 기준은 누가 어디에서 세워주는 걸까? 다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내 추진력의 비밀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하기 때문에 실패도 성공도 모두 내 탓(혹은 내 덕분)이라는 삶의 태도에 있다. 나는 내가 불완전한 인간임을 늘 명심하면서 완벽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느리고 다소 미숙하더라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그냥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보이는 것이 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컵밥을 미군 부대에 납품할 수 있게 된 계기도 대단할 것이 없다. 빠르고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컵밥만큼 부대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 없다고 판단했고, 당장 행동에 옮긴 것뿐이다. 지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매출을 올려야 하는 간절한 상황이었고, 방법을 고안했으며,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었다. 구글에 검색해 군부대의 연락처를 찾고, 이메일을 보냈다. 직접 군부대에 찾아가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미군들이 컵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때 인도네시아의 매장들이 통째로 망할 위기를 겪은 적도 있었다. 모든 매장을 철회해야 할 위기의 상황이었다. 당장 매장을 철수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을 때 핫도그를 메뉴에 추가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급히 조리법을 배워 투입시켰다. 다행히 사람들은 핫도그에 열광했고, 극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컵밥이 운이 좋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노량진 골목에서 컵밥을 파는 리어카들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여기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물론 운과 같은 신의 영역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을 사로잡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모든 메뉴를 현지화하고, 우리만의 독특하면서도 고유한 브랜딩을 확립하고, 한국 문화를 접목시켜 컵밥만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노력을 운이라고만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미국의 리얼리티 TV프로그램 <샤크 탱크>의 출연 역시 단순한 운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길을 닦아놓은 컵밥 크루들의 보이지 않는 땀과 눈물 덕분에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낚아챌 수 있었다.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웅크려 먹잇감을 탐색하는 호랑이처럼, 컵밥도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먹잇감을 발견했고 실패 없이 사냥할 수 있었다.
수많은 요식업 브랜드가 생겼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음식점은 음식만 맛있으면 생존할 수 있을까? 트렌드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이 질문에 나는 ‘고객과의 소통’이라는 답을 내렸다. 우리는 컵밥을 ‘푸드 서비스’가 아닌 ‘푸드 엔터테인먼트’라고 부르며, 친절한 소통을 목표로 한다. 그 덕분에 컵밥 마니아들이 생겼고, 정말 감사하게도 이제 그들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우리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는 팬으로서 자리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도시에 속하지 않는 유타는 백인의 비율이 거의 80% 이상이다. 그런 곳에 동양인들이 생뚱맞은 한식 푸드 트럭을 몰고 장사를 하겠다며 갑자기 나타났다. 지역 사회에서도 우리가 낯설고 어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음식을 통해 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사회의 일원으로 속하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 조금씩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난 이것이 단순히 음식을 친절하게 서빙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누구에게나 진심을 나눠주는 크루들 덕분에 빠르게 동화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 흔히 미국을 ‘소송의 나라’라고 표현한다. 개인이 조금만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해도 주저 없이 책임을 묻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타에서 소신을 가지고 성장해온 컵밥을 지켜봐 주고 지역의 명물이라고 엄지를 들어주는 단골손님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유타에 녹아들었다. 오히려 우리에게 피해가 될까 봐 지적할 사항들이 있으면 비밀 요원처럼 조심스레 다가와 알려주기도 한다. 이것이 진정한 팬덤 아니겠는가.
Who?
유타컵밥 대표
전교 꼴지, 춤밖에 내세울 것 없고 영어도 서툴렀던 그는 현재 미국, 인도네시아, 두바이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글로벌 브랜드 ‘유타컵밥’의 대표다. 2013년 송정훈 대표가 푸드 트럭 한 대로 시작한 ‘유타컵밥’은 현재 전미 매장 60개, 인도네시아 매장 200개, 두바이 및 캐나다에도 진출해 누적 판매량 3,500만 개에 달한다. ‘유타컵밥’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닌 한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송 대표는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미국인의 입맛과 현지 문화를 철저히 분석해 현지화에 성공했다.
그는 순수한 열정과 끈기, 그리고 한국 고유의 ‘정’ 문화를 접목한 ‘유타컵밥’으로 한식 패스트푸드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 받는다.
목표가 분명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일관된 루틴이 있다면 내가 설정한 목표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또한 수없이 나를 유혹해오는 온갖 것들로부터 자기 통제력을 기를 수 있다. 자주 반복되는 행동은 습관이 되어 큰 노력 없이도 자동적으로 실천하게 되는데, 이는 자기 관리 능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시간을 관리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원칙과 루틴을 설정하면 일과를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언제 할지 명확히 알게 되면 시간 낭비를 줄이고 중요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일상에서 예측 가능한 루틴을 유지한 덕분에 불확실성이 줄어들어 스트레스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작은 성과들이 누적되어 큰 성과가 나온다. 건강한 습관이 만들어지는 덤까지 누릴 수 있다. 지금 컵밥에서 지키고 있는 원칙들은 크루들과 함께 오랜 시간 논의하여 만들어졌고, 더 나은 방향성을 위해 우리는 여전히 끊임없이 치열한 논쟁을 한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잘 지켜낸 결과는 그 과정을 함께한 직원들로부터 받는 신뢰와 수많은 고객들이 보여주는 브랜드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사업을 하면 할수록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사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위기와 갈등도 비례해서 커졌다. 남들에게는 컵밥이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고 몸집을 불리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점점 커져가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오늘도 물속에서 부지런히 헤엄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그렇다. 행복할 때보다 낙담하고 좌절하고 눈물 흘릴 때가 훨씬 더 많지만 그렇다고 멈추거나 뒤돌아보지 않는다. 자꾸 뒤를 돌아볼 때마다 내 안의 두려움도 커지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게 또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 빠르게 살피고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부정의 수렁에 빠지는 대신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뿐인데, 이 대단할 것 없는 태도 덕분에 지금의 컵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나 혼자만이 이뤄낸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해 준 덕분이다. 컵밥 크루들이 아니었다면 컵밥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고난의 순간마다 든든한 힘이 되어준 모든 크루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푸드 트럭에서 손님과 사장으로 만나 지금은 컵밥의 COO로 일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덕이,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컵밥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해 준 나의 뿌리인 가족에게 깊은 사랑을 전한다. 특히 다섯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컵밥의 엄마 역할까지 맡아준 ‘슈퍼 울트라 몬스터’, 나의 아내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글 _ 송정훈 / 정리 _ 한상훈 / 자료출처 _ 도서 ‘아웃 오브 더 트랙’, (주)필름, 유타컵밥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