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중용 23장
2024.12.24.
글_ 황병우 DGB금융그룹 회장
며칠 전 대구상공회의소에서 매달 주최하는 '대구CEO조찬포럼'에 참석했다. 지금까지는 특강하는 분들이 경제경영 관련 전문가였지만 그날은 대구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대표였다. 영세한 공구상으로 출발해 50여 년 만에 우리나라 공구 유통시장 1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영 비결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공구 유통시장의 절대 비중이 서울 청계천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업계 1위 업체가 대구에 소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긴 하다.
필자는 이 기업과 인연이 깊다. 은행에서 기업경영 컨설팅 업무를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2006년 어느 날, 대표님께서 경영 컨설팅을 받고 싶다고 했다. 이후 10여 년간 크고 작은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누구보다 이 기업과 대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 기업을 방문했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대표님 책상에는 듀얼 모니터가 있었는데, 은행에서도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진화된 마케팅 시스템이 구현돼 있었다. 대표님께서 직접 마우스로 고객 정보, 파트너사 정보, 영업사원 실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컨트롤하고 직원들과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후에도 당시 중소업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바코드 관리 시스템, 온라인 주문 시스템 등 이 기업의 혁신 경영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없이 많았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을 꼽으라면 이 기업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 기업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큰 기대 없이 포럼에 참석했다. 그런데 회사 발전과 경영 혁신 내용을 기대한 것과는 달리 본인의 인생 이야기를 주로 했다. 군대에서 하던 PT 체조를 40여 년간 매일 180회 하고 있고,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영어를 23년째 배우고 있는 흔적들을 보여줬다. 듣고 있자니 컨설팅 당시 대표님은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벌써 각 부서를 돌며 해야 할 일을 꼼꼼히 적어놓고, 우리나라 모든 대학의 AMP 과정(최고경영자 과정)을 듣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서울과 대구를 오갔으며, 집무실에는 유명한 분들의 어록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수십 년간 선도해온 경영 혁신의 이면에는 매사 최선과 정성을 다하는 대표님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필자의 집무실에는 중용(中庸) 23장을 적은 액자가 있다. 전임 최고경영자(CEO)께서 아끼던 문구라 여전히 걸어두고 소리 내 읽어보곤 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나오고, 겉에 배어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구 골목의 영세한 업체가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것을 뛰어넘어 국내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어쩌면 중용 23장의 가르침을 직접 실천하는 그분의 삶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새해 녹록지 않은 여러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정성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중용 23장을 실천해 나간다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있을까.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ontributors/11201680
대구상공회의소 세미나 최영수 회장 특강 모습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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